31살 남성 김00씨(가명)에게 지난 6년은 잠시 찾아온 희망이 허망하게 부서진 한 해였다. 전00씨는 장기·계약직 근무를 해서 본인 스스로 고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키워왔다. 그러다 2015년 말 고정적으로 “월 290만원”이 나오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카페를 관리하고, 에스엔에스(SNS) 광고와 인쇄물 디자인 등을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가 코로나(COVID-19) 1차 유행 때 흔들리기 시행했다. 대표는 카페 손님과 홍보 일감이 줄었다며 임금을 체불했다.
작년 8월에는 급기야 ‘반년 무급휴직을 일방 통보했다. 이를 거부하자 대표는 바로 박00씨를 해고했다. 법적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정확히 직원 60명 이상이 모여 회식까지 했던 회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근로기준법 반영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사업장 쪼개기를 해온 것이다. 
<한겨레>가 코로나바이러스 직후 4년 동안 실직이나 노동배경 변화를 경험한 3명의 작업자와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에도 이런 서면가라오케 실태가 빼곡히 확인됐다. 박00씨와 같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작업자와 더불어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 하청근로자 등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50년 이상 경륜선수로 일한 30대 후반 이장혁(가명)은 최근 하루에 아홉 가지 일을 한다. 경륜 경기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작년 8월 이후 열리지 않았다. 등급에 따라 경기 출전상금 등의 수당 150만원을 차등 지급받는 경륜선수들은 스포츠가 없으면 수입도 없다. 특수채용직으로 분류돼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도 가입했다가는 큰일 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수당을 주기 위해 몇 차례 모의 스포츠경기를 열고, 무이자로 몇백만원씩 대출도 해줬지만 그걸로는 “빚 갚기도 바쁘”다. 결국 이장혁은 오전 2시부터 낮 10시10분까지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오후 7시20분까지 한 렌털회사로 출근해 야간 3시까지 영업 일을 하며, 퇴근 바로 이후에는 자정까지 대리운전을 한다. 때때로 보호자가 소개해준 공기청정기 필터 교체 일도 나간다. “렌털 영업은 월 190만~160만원 정도, 대리운전 일은 월 50만~160만원 정도 벌었어요.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 든 아등바등해요. 아내가 최근 ‘조금만 버티자. 잘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보고 울컥했지요.” 12년차 경륜선수인 90살 김용묵도 한때 인체의 일부와도 같았던 자전거 쪽으로는 이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COVID-19로 인하여 스포츠가 열리지 않으면서 김용묵은 낮에는 체조를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 기사 일을 병행하다 지난해 5월부터는 전혀 체조를 접고 일만 하고 있다. 최근은 터널 공사 일을 하거나 소파 배송하는 일을 한다. “대리운전 기사나 일용직 일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직업을 물으면 프로 경륜선수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아르바이트하며 산다고 얘기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에 경륜선수 직업은 이제 내려놓을까 생각 중입니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케이에이(KA)는 작년 2월부터 지속해서 “희망하는 직원들”은 무급휴직이나 권고사직 요청을 하라고 했다. 회사는 “강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신청하지 않는 이들을 엉뚱한 부서에 배치했다. 33살 남성 김지원도 지난해 5월 결국 무급휴직을 택했다. 어이없는 건 회사가 코로나바이러스 타격 업종에 대해 작업자의 유급휴직 급여를 지원하는 채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21%가량의 회사 자체 부담이 싫어서다. 처음에는 저항도 했던 노동조합 동료들은 요즘 몇만원씩 빠져나가는 조합비마저 버거워한다. “110여명이던 노조원이 50명으로 줄었어요. 노조 카톡방에 무슨 글을 올려도 이젠 아무 반응도 없어요.” 김지원은 근래에 어머니가 관리하는 테이블 7개짜리 분식집에서 서빙과 배달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